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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중관계 평가와 2020년 전망 [정세와 정책 2019-30호]
2019-12-23 조회수 : 2,137 이성현


[2020년 정세전망 특집호]


2019년 한중관계 평가와 2020년 전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2019년 한중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사드’를 벗어났으나 실제적으로는 ‘사드의 그림자’ 안에서 양자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정체된 시기였다. 다투고 나서 화해를 하였으나 여전히 서먹서먹한 감정이 남아 있는 친구처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이였다고 할 수 있다. 다가오는 2020년은 한중관계 ‘회복’와 ‘비대칭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한국이 기존 동맹인 미국 등 주요국들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쪽으로 외교 방향이 기울게 되는 측면과, 미중관계 악화 속에서 한국을 중국쪽으로 견인하려는 중국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가는 측면이 교집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미중관계 악화가 심화되는 배경 속에서 한국이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 이웃인 중국과의 관계를 조율시키는 숙제는 2020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한중관계의 4대 불협화음 요소 

​  1992년 한중 수교이후 2019년까지 한중관계 27년의 과정은 경제적 협력 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사드로 인해서 한중관계에 ‘금’이 가기 전까지 경제영역에서의 양자 협력은 순조로웠고, 이로 인해 양자간 충돌적 요소에 대한 적극적 관리가 돌이켜보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한중관계의 4대 불협화음 요소는 △북핵 문제, △한미동맹, △한중 비대칭관계, △반중/혐한 감정이다. 북핵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느냐를 두고 한중간 조율이 잘 된 적도 있었지만 이견을 보인 적도 있었다. 중국은 한미동맹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한미동맹이 북한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미국의 아태전략의 일부분인지에 대한 성격 규정은 한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쟁적 부분이었고, 중국은 한국 정부가 바뀔 때 마다 끊임없이 ‘확인’ 작업을 했다. 


  ‘비대칭 관계’와 ‘반중/혐한 감정’은 속으로 곪은 상처처럼 가끔씩 언론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인지도는 충분하지 못했다. 한중관계가 평등하기 보다는 중국쪽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진’ 비대칭관계로 서서히 바뀐 것은 무엇보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이 가져온 양자관계 변화가 그 저변에 깔려있다. 1992년 수교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천299억달러로 세계 14위, 중국은 4천227억달러로 10위를 기록했으나 그후 중국은 급성장을 하였고 2018년 중국 경제 규모는 한국의 8배로 훌쩍 커버렸다. 마치 처음에는 두 선수의 체급이 비슷했지만, 얼마 후 다시 보니 체급 차이가 너무 달라져서 같은 경기 무대에 올라설 수 없게 된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비슷하거나 낮아진 것에 비해 한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점진적으로 심화되었다. (아래 표 참조).


 

  ‘한국이 중국을 필요로 하는 정도’와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정도’에 시각차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중국이 밀리고 있지만,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중국이 이제 미국과 한 수 겨룰 정도의 강대국으로서 자리매김했다는 역설적 설명도 가능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견국 중에서도 한 때 상승기세를 탔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등수가 몇 계단을 더 내려갔다. ‘상승하는 중국’과 ‘하강하는 한국’의 대조는 양국의 ‘비대칭 관계’를 2020년에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적 환경이다. 강대국 중국의 시야에 들어오는 한국의 위상은 이전만큼 못하다. 자주 반복되는 중국 지도자의 한국 대통령 특사 '하대 논란'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불어 한미동맹 문제 등 근래 한국과 주요 우방과의 관계 악화,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경제 지위 하강은 중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몸값’을 더욱 낮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반중 감정’, 중국에서의 ‘혐한 정서’는 양국 정부가 노력하고 있으나 그 심각성에 비해 충분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경주되고 있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서로 간의 국가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 숫자는 ‘사드 보복 기간’에도 비슷하거나, 심지어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사드보복과 관련 없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민간 교류는 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 유학온 중국유학생들이 한국사회에서의 체험을 통해 ‘반한’이 되고, 중국에 유학간 한국유학생들이 중국사회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반중’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뿌리가 깊다. 일찍이 온라인 상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민간단체가 2008년부터 ‘선플 운동’ (악플이 아닌 긍적적 댓글 달기)을 전개하기도 했다. 사드 때 다시 한 번 악화되었다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 하다가 이번 홍콩 사태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한중 대학생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홍콩 지지 대자보 놓고 한중 대학생간 폭행이 발생하기도 했고, 중국 온라인에서 홍콩을 지지하는 한국학생의 ‘신상 털기'를 하거나 대학 캠퍼스에서 한국 학생들 향한 '동전 테러’ 사건이 발생했고, 한국 학생들은 서울 대학가 주변에 널리 퍼진 중국 ‘마라탕’ 음식점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이 사안이 심각한 이유는 한중관계의 ‘미래 세대’들끼리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심 평온’했던 2019년 한중관계


  2019년 한중관계도 이러한 지난 27년간의 한중관계의 궤적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2019년 한중관계는 전반적으로 평온했다. 별다른 사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드’처럼 한중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거나, 북한 도발을 둘러싸고 치열한 이견을 보였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 지도자가 천안문 망루에 오르거나, 중국 지도자의 한국 방한도 없는 한 해였다. 중국 군용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은 그나마 특이 사항이었다.  


  이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바쁜 이유에 기인하기도 한다. 미중 무역전쟁, 홍콩 사태,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참상, 美 하원의 대만보증법(Taiwan Assurance Act) 통과 등 미국과 대만 관계 강화, 이 모든 문제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북미 사이에 ‘중재자’ 역할에 ‘올인’하였다. ‘김정은-트럼프’ 조합은 역사상 다시 오기 힘든 조합으로 보고, 이 기회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경협 진전, 나아가 한반도 평화 정착,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는 역사적 ‘기회의 창’으로 보고 이에 외교력을 전력질주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가장 주요한 당사자인 북미간 협상에 우선 중점을 둔 후, 그 후 종전선언, 평화협정 과정에 가서 중국도 참여시킨다는 ‘단계적 구상’을 가졌던듯 하다. 결과적으로 중국입장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에서 중국과 이전만큼 소통하려하지 않는 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한중간 최대 외교 이슈라 할 수 있는 북핵 문제에서 양자간 협의가 줄어들자 외교전반에서 양국간 접촉이 대폭 줄었고, 사드 파동 이후 줄어든 양국간 경제 교류, 인적 교류 등과 맞물려 이것은 전반적인 한중관계의 ‘위축’결과로 이어졌다. 종합적으로 2019년 한중관계는 ‘무심평온’했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무심’했고, 큰 악재가 없었으니 관계는 ‘평온’했다. 

사드 보복의 종결을 원하는 한국과 미중 무역전쟁 하에서 한국이 필요한 중국


  2019년 하반기 들어 중국정부 및 민간 상공단체들의 한국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지방 성 정부의 활발한 한국 방문이 눈에 뜨인다. 막혔던 한중 관계의 혈관에 다시 혈액이 도는 움직임이다. 


  중국이 최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한국에 보내 한중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배후의 원인을 보면 노골적이다 싶은 정도로 미국 견제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사드로 막힌 한중관계를 푼 것은 미중관계였다는 의미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에 밀리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중국쪽으로 ‘견인’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다고 판단하고 관계회복에 나선 것이다. 반길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중간 ‘반관반민’ 회의에서 중국측은 한중관계 회복 의사를 밝히면서도 사드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시진핑이 2020년 봄에 한국을 방한하더라도, 사드가 여전히 한국에 있는 한, 한중관계 회복엔 제한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지속적 영향력 행사 차원에서 ‘사드 카드’를 한켠에 치워두긴 하지만 완전히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왕이의 방중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첫출발로 봐야 할 것이다. 왕이의 한국 방문 발표 직후 중국의 군용기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무단진입하였다. ‘병주고 약주고 하는 식’이라기보다는, 중국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의지 표시다. 한국에 대한 배려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드 보복은 누그러 뜨리고 있다. 얼핏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지만 중국의 국익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다. 중국은 한중 사이에서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기를 더 원하는 쪽이 한국이라는 점을 안다. 

2020년 한중관계 관계 회복 속 비대칭화 심화


  2020년 봄 기대되는 시진핑 방한을 전후로 사드 경제 보복의 마지막 해제 상징으로 여겨지는 중국인 단체관광 (크루즈, 전세기), 그리고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모르쇠로 부인하면서도 실제로는 ‘괘씸죄’로 가하였던 비공식적 제재도 시진핑의 방한과 더불어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향평준화’된 한중관계의 ‘뉴노멀’ (new normal)은 큰 틀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시, 한중관계는 다시 악화될 것이고, 그 파동은 분명 사드 때 보다 더 큰 양자 관계 파열이 될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화자되는 이유다.  


  결국 한중관계는 ‘사드前’과 ‘사드後’로 나뒨다. 그런데 한국이 사드 배치과정에서 ‘점수’를 잃은 대상은 중국 뿐만이 아니다. 한국이 보인 우유부단한 태도는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과 맞물려 한국의 동맹인 미국내에서도 한국을 믿을 수 있는 동맹인지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한국이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사드를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충분한 갈채를 받지 못한 이유다. 미국은 또한 한국이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의 보복을 받고 있는 와중에서도 ‘전략적 인내’를 했다. 이는 아무것도 안한 것을 고상하게 일컫는 말이다. 친구가 나 때문에 맞고 있는데 뒷짐 지고 구경한 격이다. 


  이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포지셔닝’ 전략에 대해 한국이 좀더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단순히 미중 사이의 기계적인 중립이나, 미중 둘다 중요하니 어느 쪽도 선택하면 안된다,는 논리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주변국 ‘줄세우기’는 강대국들의 오랜 역사적 패권 행동 양식이다.  


  한중관계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외생 변수’의 영향을 받는 시기로 들어섰다. 그 변수는 미중관계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한국 외교자원의 포화 상태를 느끼며 버거워하고 있는 한국 외교가 미중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에까지 말려들어가면서 한국 내 관찰자들 사이에 한국의 대외관계에 대한 감응 차이를 유발하고 서로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해법’을 제시함에 따라 한국이 국가차원에서 통합적이고 일관적인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미중 갈등 심화의 이 시기에 ‘중국만’ 아는 중국전문가와 ‘미국만’ 아는 미국 전문가들의 조합은 개화기 때 조선의 지식인들이 ‘미국편’, ‘청나라편’, ‘일본편’을 들어야 한다면 혼란을 경험한 때와 유사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미중 모두로부터 구애를 받기 보다는, 양쪽 모두로부터 전략적 의구심을 받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한국 외교의 어려움을 가중 시킬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한중 간 최대 장애물이었던 사드 갈등이 마무리 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한국은 사드보다 더 크고 더 근본적이고 더 장기적인 도전에 들어서고 있다. 위기를 조장해서도 안되지만, 한국이 직면한 위기의 ‘사이즈’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 모색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